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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제 5장

어느 마을에

 

까탈스러운 여우가 하나,

소식통 고슴도치가 하나,

술고래 너구리가 하나,

어리숙한 소가 하나가

무리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이 넷은 조리원 동기였죠.

 

여우의 아들, 고슴도치의 딸,

너구리의 큰 딸, 소의 둘째 딸이

이 조리원에서 하루차이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그림으로 설명하면 편할 텐데,

아쉽네요.)

 

이 조리원 동기라는 우정은

참으로 오래도 갔습니다.

자그마치 무려 약 15년.

우정으로 불러도 되나...?

그냥 같은 동네에 사니까

오프라인 맘카페 같은

느낌이었어요.

 

등장인물 소개를 해야겠죠.

까탈스러운 여우는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어요.

 

여우는

정보가 빠른 편이었습니다.

인맥이 좋았거든요.

항상 새로 생긴 학원에

먼저 보내고

이 무리의 자식들을 학원에 등록시킨 후

자신의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었죠.

 

어쩌면... 그 집 자식들이

다니기 싫다고 한 것을

잘 들어준 것일지도 모르죠.

 

소식통 고슴도치는

딸이 하나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딸은 어릴 때부터

유독 수줍음이 많아 보였습니다.

좀 느리고 사회성이 부족했어요.

어쩌면 요즘 얘기하는

경계성 지능장애(?)

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고슴도치가 소식통인 이유는

말도 많은데,

비밀이랍시고 남들한테

못하는 얘기가 없었습니다.

상담한다고 조금 솔직히 얘기하면

다른 아줌마들은 일주일만 지나면

다 알고 있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어디서 다 들어온 얘기들이라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고

듣지 않은 정보는

잘 모르는 것이 단점이죠.

 

술고래 너구리는

정보가 느린 편은 아니었어요.

고슴도치가 알아온 정보 중 

몇 개는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너구리도 여우처럼

얍삽한 기질이 있었어요.

혹시나 정보가 더 있을까

모른척하며 주워듣는 게 많았죠.

 

그리고 자신의 정보는

잘 얘기하지 않았어요.

지금으로 따지자면

맘카페에서 정보탐색을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어리숙한 소가 있었어요.

소는

연년생으로 딸이 둘 있었습니다.

시골출신이고

이 중에서 가장 바쁘게

직장생활을 했어요.

혹시나 바빠서 정보가 느릴까 봐

항상 여기저기 귀를 기울여서인지

팔랑귀가 되었죠.

그리고

그 사람들과 정보들을

너~무 믿었죠.

 

소의 첫째 딸은

공부 머리는 좋은데

수줍음이 많았어요.

그리고 참 착했습니다.

엄마 말은 다 들을 정도로.

 

하고 싶지도 않은 반장선거에 나가

일단 나가라는 엄마의 말에

한 표도 받지 못할

쪽팔림을 마주할 정도로요.

 

소의 둘째 딸도

머리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노력형이었어요.

이 딸 또한 착했어요.

그래도 언니를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일찍 깨우친 편이긴 합니다.

 

이 둘은

착함을 강요당했어요.

좀 야무지게

안 당하면서 사는 법은

배울 새가 없었죠.

 

소의 첫째 딸은 여우 딸의 예비 친구,

둘째 딸은 고슴도치 딸의 엄마였으니까요.

사실 둘째 딸이 깨닫기 더 쉬웠을 겁니다.

 

귀찮고 버거운 마음은

버려져 상처 입은 마음보다

판단하기 쉬웠을 테니까요.

 

여우와 소의 첫째 딸 둘은 동갑이었어요.

여우의 딸은 딱 여우고

소의 딸은 곰이었어요.

여우는 곰이 필요할 때만 친하게 지내고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했습니다.

 

곰은 어릴 때는 외로움을 타지 않았어요.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이 꽤 있었어요.

소가 외로움을 주입하기 전까지.

 

동생만 있어도 충분한 세상에

친구란 꼭 필요한 존재고

네가 혼자 다니면

엄마가 마음이 아프니

뭐든지 여우 딸이랑 같이 다녀라

했습니다.

 

이 곰이 참 착했어요.

엄마가 친구 만나지 말라고 하면 안 만나고

친구 데리러 가라 하면 데리러 가고

(아... 진짜 호구새끼가 따로 없네...)

중학교 때 사귄 친구들이

처음으로 본인이 친하고 싶어서

친해진 친구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직접 사귀어본 경험이

전무하니 사회성이 떨어졌죠.

 

(학습지 교사를 하며

초등학교 전반에 참견을 할 수 있던

엄마의 손이 뻗는 것이 덜한

중학교가 그나마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면,

 

그래서 방과후 수업도 다 따라서 다니고

학원도 다 따라서 다니고

 

심지어 동생도 챙겨야 하니

동생이랑 같이 학원을 다녀

또래와 어울리는 건 사치고

 

동생 또래와 노는 게

동생도 돌보면서

학원에서 배우는 게

 

소는 이득이라고

생각하며 곰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사실 두 명을 동시에 보내면

학원에서 할인해 주는 것도 있었고,

저희가 태어났을 때

개구리소년 사건도 일어나

흉흉해서

같이 다니라는 뜻이었죠.)

 

또래와 어울리도록

학원에 보내는 것은

힘들다며

독립심은 죽이고

 

동생도 챙기고

동생친구들도 챙기며

이상한 모성애 같은 게

자라나게

키웠습니다.

 

모순이 느껴지지 않나요?

친구는 필요한 존재,

하지만 동생과 떨어져

다른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안된다.

 

이건 사회성을 키우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 다음장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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